어느 도망자의 생존 기록

글쓴이. 청청잡담 이인희 대표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당신의 Soul Pathfinder(영혼 길잡이), 요바라고 해요. ㈜청청잡담에서, 아웃사이더의, 아웃사이더에 의한, 아웃사이더를 위한 커뮤니티 ‘누비우(nuviu)’를 만들고 있지요.

조금 더 소개하자면 저는 도망에 정통한 프로 도망러이기도 하답니다. 학창 시절엔 잦은 결석과 조퇴로, 필수 수업일수만 턱걸이로 채워 유급을 면할 정도였다니까요. 떡잎부터 남달랐던 제가 학년말 반 친구들에게 받은 롤링 페이퍼에는 대개 이런 편지가 담겼어요. “우리 얘기 많이 못 해 봤지? 아프지 마. 내년에는 학교에서 자주 봤으면 좋겠다.” 돌이켜보면 딱히 아프지는 않았던 기억이에요. 그럼에도 영문을 알 수 없이 헛헛했던 그 소녀는, 왕왕 교실로부터 도망쳐 홀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습니다. 선생님을 포함한 어른들이 그런 저를 어쩌지 못한 건 아마도 당시 제가 아동양육시설, 흔히 보육원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지냈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해요. 부모 없이 방황하는 가엾은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심스러웠던 게 아닐까 하고요.

으레 그래야 하는가보다 식으로 진학한 대학교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자퇴했어요. 늑대 무리에서 자라나 인간 사회로 들어온 모글리처럼, 보육원에서 퇴소한 저는 별 게 다 무섭고 지나치게 허약했거든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이라던가 홀로서기와 함께 무서운 기세로 들이닥치는 우울증을 감당하지 못해, 저는 좀처럼 나갈 수 없게 되었어요. 어쩌다 자연히 죽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행운은 찾아오지 않더군요. 방값을 위한 파트타임 잡을 이따금 하면서, 그렇게 계절은 여덟 번 바뀌어 갔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찌어찌 일하는 요령이 생긴 모양인지 18만 원을 벌기 위한 파트타임 잡은 120만 원을 버는 풀타임 잡이 되기도 하고, 사원에서 과장으로 진급하기도 했어요. 물론 한 직장에서 이 모든 성과를 얻은 건 아니었어요. 저의 도망벽은 건재했거든요. 10년 동안 10번 가까이 이직을 반복하고 사는 곳과 핸드폰 번호도 수시로 바꿔댔으니까요.

이 발견은 저로 하여금 ‘스스로의 좋은 보호자’라는 원함을 가지게 했어요. 여태까지는 생존만을 위해 닥치는 대로 나를 돌봐왔지만, 이제부터는 ‘괜찮은 어른으로서의 요바’를 목표로 나를 키워내고 싶다는 마음이 싹텄고요. 그 기대의 일환으로, 서울로부터 있는 힘껏 도망쳐 강원도 동해에서 청청잡담과 누비우를 만들고 있답니다.

세상은 새삼스레 우리를 찾아냈는지 몰라도 저는, 당신은 본래 여기에 있었어요. 은둔, 고립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고, Z세대의 특성을 열거하며 온통 떠들썩하기 전에도 말이죠. 우리는 현상이 아니라 실존이며 부연 설명이 필요한 돌연변이가 아니에요. 그러니 그저, 살아있는 동안 (내가 닮고 싶은) 퍽 괜찮은 내가 되어가자는 격려가 당신의 영혼에도 닻이 되어 주길 바라요. 또 소망하기로는 저와 당신이, 무릎과 무릎을 맞댄 온기가 느껴지는 거리에 앉아 우리가 싸워내고 지켜왔던 생의 무용담을 나누고, 다시 서로를 돌아보고 돌보며 돌파할 마음의 체력을 얻는 순간이, 몹시도 가까운 어느 미래에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저는 가족과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비로소 최근 혼자 지내게 된 시간이 많아지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그저 홀로 지내는 시간이 자유로워 좋았다가, 점점 나 자신에게 오롯이 배정된 시간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내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커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의 낮은 고독력을 키워야 하는 동기가 생긴 것이죠. 

나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고독력을 기르기 위해 여러가지 시도를 해 보았는데요. 가장 먼저 나를 위해 세끼의 밥을 차려 먹는 것을 택했습니다. 저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 자신만을 위한 세끼의 요리를 하는 건 사실 어려웠어요. 아침 한끼는 거르고, 다른 한끼는 배달 시키는게 쉽고 편했죠. 하지만 뭐든 힘을 기르려면 노력과 시간이 따르는 법. 내가 좋아하는 취미로, 가장 좋아하는 메뉴들로 시작한다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아침은 간단한 프렌치토스트, 점심은 야채를 먹기 위한 샐러드 우동, 저녁에는 집밥의 정석인 부대찌개로 주말의 세끼를 차려 먹었는데요. 내가 나 자신의 건강을 위해 온 하루 고민했다는 사실과, 좋아하는 취미와 음식들로 꽉 채운 하루 세끼, 하루의 시작과 끝 모두 내 손으로 이루어냈다는 뿌듯한 감정. 이 모든 것들이 저를 기분좋게 만들었습니다. 혼자서도 충분히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고독력 기르기의 시작이 아닐까 싶어요. 구독자님들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꽉꽉 채운 고독력 충만한 하루를 만들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소득불평등 수준이 높은 사회일수록 지위고하 막론하고

불안과 사회적 평가 위협에 시달린다. 이런 사회일수록 외모에 대한 압력이 심하다. 

불안을 없애는 쉬운 방법은 위계를 확인하는 거니까.

외모는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위계니까. 

- 김소민 <나의 아름답고 추한 몸에게> p.26 - 

나를 돌보는 다정한 음식

바쁜 일상에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리니 하루에 밥 한 끼 만들 여유가 없고, 올라버린 물가로 외식을 하기가 부담스럽죠. 끼니를 거르거나 인스턴트 음식들을 배달 시켜 먹곤 하는데, 고된 하루를 버틴 나의 몸에게 미안한 마음이 자연스레 듭니다. 주말만이라도 나를 위한 다정한 음식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커져 주방 앞에 서게 되었어요.🍴

종종 칼에 베일 정도로 요리가 능숙하진 않지만, 누군가 해주는 요리가 아닌 나를 위한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레시피를 찾아 부추를 곁들인 돼지고기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나를 위한 음식은 요리하는 과정에서 보람을 얻게 하고 허기를 채워줄 뿐 아니라, 무언가에 정성을 담는 법도 배우게 하는 것 같아요. 조금 재료가 많고 복잡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만들고 난 후엔 "내가 이런 것까지 할 수 있단 말이야?" 하며 자신감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납니다.

준비시간 10분, 요리시간 30분. 총 40분만 투자하면 해내게 되는 자신감 충전 레시피

[부추 샐러드 & 양념 돼지고기 구이(2인분 기준)]를 소개합니다.